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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처럼 일을 하던 어느 화요일 오후, 누나에게서 갑작스렇게 전화가 걸려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빨리 할아버지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팀장님께 급히 사정을 애기하고 차를 타고 부리나케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
할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7년전, 내가 20살 되던 해부터 몸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입원하고 암 진단을 받았다.
위기의 순간을 몇 번이나 넘긴 후에는 명절과 제사도 다 지내면서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할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악화더어갔다. 7년의 투병생활 동안 몸의 곳곳이 멍들고 배가 불러오고 음식을 잡수는 것도 힘겨워하시게 되셨다.
그런데 그냥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할아버지 병세가 많이 안 좋아진 것을 안 최근에도 찾아가는 것보다 나의 일들을 우선시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오늘 돌아가시지는 않을꺼라고, 다만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셨을꺼라 생각하며 나를 위로했다.
*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옆에서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온 몸에 고통이 극에 달하셨는지 매우 힘겨워하며 "아파.."라는 말을 하셨다.
어른들은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한 채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병세가 급격하게 악회되어서 돌아가실 것 같아서 친척들에게 모두 연락을 한 것이었다. 11시쯤 내가 오고 12시가 되어 큰 고모를 빼고 모두 오게 되었다.
둘째 작은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계속 말을 붙이며, 보고 싶은 사람 없냐고 할 말 없으시냐고 물으셨다.
할아버지는 "안 가" "안 가, "가", "가"라는 말을 하셨다.
둘째 작은 아버지가 "아버지 우리 가라고? 우리 다 가?"라고 말을 하신 순간
할아버지는 아주 짧은 찰나 정신이 돌아오셔서 "이거 쑥맥 아니여"라는 말을 하셨다.
정신이 없는 동안 할아버지는 이제 "갈꺼야" "갈꺼야" 라는 말을 하셨다.
"어딜 가요 아버지"
"집에"
"여기가 집이에요"
혼란스러웠다. 할아버지가 오늘 돌아가시지 않을꺼라고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자꾸 눈물이 날것 같았다.
얼마 후 둘째 작은 아버지가 부른 목사님이 오셨다.
개신교에서 죽기 전에 하는 예배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사님이 할아버지에게 말을 몇 마디 건네면서 예배를 시작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에라도 믿기로 하셨으니 천당 가실겁니다 란 형태의 말을 했던것 같다.
목사님과 친척들이 예배를 올리는 사이 잠깐 방 밖으로 나왔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예배를 드리니까 마치 할아버지가 정말 가버릴 것만 같아서 화가 났다.
목사님이 예배를 끝네고 나간 후 사람들이 목사들을 배웅하러 방에서 빠져나오고
할아버지가 있는 방에는 나와 사춘동생 성훈이와 맏내 작은 아버지가 있었던 것 겉다.
할아버지는 더이상 고통스러워 하지 않고 계셨다.
표정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아까와는 달리 편안해지신 듯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편안히 숨을 쉬시더니 더이상 숨을 쉬지 않으셨다.
*
할아버지의 영종 사진을 들고 걸을 때도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때도
이 현실이 거짓말 같았다.
절하고 있는 내 뒤에 앉으면서 밝게 웃고 계실 것 같은데
절하고 있는 나의 앞에서 나를 보고 계셨다.
거짓말 같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빨리 할아버지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팀장님께 급히 사정을 애기하고 차를 타고 부리나케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
할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7년전, 내가 20살 되던 해부터 몸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입원하고 암 진단을 받았다.
위기의 순간을 몇 번이나 넘긴 후에는 명절과 제사도 다 지내면서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할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악화더어갔다. 7년의 투병생활 동안 몸의 곳곳이 멍들고 배가 불러오고 음식을 잡수는 것도 힘겨워하시게 되셨다.
그런데 그냥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할아버지 병세가 많이 안 좋아진 것을 안 최근에도 찾아가는 것보다 나의 일들을 우선시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오늘 돌아가시지는 않을꺼라고, 다만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셨을꺼라 생각하며 나를 위로했다.
*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옆에서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온 몸에 고통이 극에 달하셨는지 매우 힘겨워하며 "아파.."라는 말을 하셨다.
어른들은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한 채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병세가 급격하게 악회되어서 돌아가실 것 같아서 친척들에게 모두 연락을 한 것이었다. 11시쯤 내가 오고 12시가 되어 큰 고모를 빼고 모두 오게 되었다.
둘째 작은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계속 말을 붙이며, 보고 싶은 사람 없냐고 할 말 없으시냐고 물으셨다.
할아버지는 "안 가" "안 가, "가", "가"라는 말을 하셨다.
둘째 작은 아버지가 "아버지 우리 가라고? 우리 다 가?"라고 말을 하신 순간
할아버지는 아주 짧은 찰나 정신이 돌아오셔서 "이거 쑥맥 아니여"라는 말을 하셨다.
정신이 없는 동안 할아버지는 이제 "갈꺼야" "갈꺼야" 라는 말을 하셨다.
"어딜 가요 아버지"
"집에"
"여기가 집이에요"
혼란스러웠다. 할아버지가 오늘 돌아가시지 않을꺼라고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자꾸 눈물이 날것 같았다.
얼마 후 둘째 작은 아버지가 부른 목사님이 오셨다.
개신교에서 죽기 전에 하는 예배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사님이 할아버지에게 말을 몇 마디 건네면서 예배를 시작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에라도 믿기로 하셨으니 천당 가실겁니다 란 형태의 말을 했던것 같다.
목사님과 친척들이 예배를 올리는 사이 잠깐 방 밖으로 나왔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예배를 드리니까 마치 할아버지가 정말 가버릴 것만 같아서 화가 났다.
목사님이 예배를 끝네고 나간 후 사람들이 목사들을 배웅하러 방에서 빠져나오고
할아버지가 있는 방에는 나와 사춘동생 성훈이와 맏내 작은 아버지가 있었던 것 겉다.
할아버지는 더이상 고통스러워 하지 않고 계셨다.
표정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아까와는 달리 편안해지신 듯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편안히 숨을 쉬시더니 더이상 숨을 쉬지 않으셨다.
*
할아버지의 영종 사진을 들고 걸을 때도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때도
이 현실이 거짓말 같았다.
절하고 있는 내 뒤에 앉으면서 밝게 웃고 계실 것 같은데
절하고 있는 나의 앞에서 나를 보고 계셨다.
거짓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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