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추억을 주는 사람

    유명인과의 만남이 사람들에게 작은 추억을 주듯이 단 한번을 만나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는 사람이 있네 나이를 먹고 좋은 추억을 회상할 때 생각나는 것이 함께한 사람인 것처럼 추억 안에는 사람들이 있네 내가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듯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받았네 아름다웠던 추억에 빠지면 너무나 따스해서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고 난 너무 늦어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네 참 오랜 시간을 추억의 향수에 젖어 그리워했했지만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네 내가 그리워한 것은 변해버린 나와 그 사람이 아닌 추억 속의 나와 그 사람이었다네 나 이제 다만 바라는 것은 내가 느낀 추억의 따스함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하네 컴퓨터처럼..

    존재의 이유와 교체될 수 없는 것

    존재의 이유와 교체될 수 없는 것 -사회란 매트릭스 안에서- 인간이라면 문득 그런 질문을 던져보지 않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은 답은 없다.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도 온 곳도 간 곳은 없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100년도 채 안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인 잠이나 먹는 것에 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내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근로시간이 많은 나라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을 하면서 보내기도 한다. 따지고 보니 이 "일"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 것인데 일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고 힘들고 따분하기만 하다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안타깝게 보내게 되어 버린다. 일부의 사람들은 어..

    잊을 수 없는 것

    전에는 시간이 지나면 잊고 싶은 것을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지나도록 잊을 수 없는 것을 보면 잊을 수 없는게 있나 보다. 아니면 잊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2008.02.27 19:40

    운명

    나는 운명을 믿는다. 어릴 때의 나는 운명을 믿지 않았지만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쯤부터 운명에 대해 믿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어떤 사건이나 누군가의 개입 없이 혼자 생각된 사고의 끝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어릴 때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 사주팔자나 점을 지금도 믿는 편은 아니지만 그 때의 나는 여타 사람들이 그렇듯 운명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떤 날은 인터넷상으로 글쓰는 사람들의 모임(자카넷)에서 다른 작가분들과 채팅상에서 대화하다가 운명에 대하여 토론을 벌인적도 있었다. 그 때 토론했던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운명은 없는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었고 그 사람은 운명의 존재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하였었다. 그 분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

    싸움

    늘 싸운다. 무료함과 싸우고 내 안의 감정들과 싸우고 자꾸만 편해질려고만 하는 나와 싸운다.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을 하려는 나와 싸운다. 이미 지나고 끝난 일을 마음 속에 담아둔 나와 싸운다. 잊어야 함을 잊지 못하는 나와 싸운다. 싸우기 위해 자꾸만 미친듯이 다른 것에 몰두하는 내가 이제는 가끔은 무섭게 느껴진다. 친구에게 사람을 왜 이렇게 노려보냐라는 말을 들었다. 웃기 위해 노려한다. 쾌활하고 밝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또 긴장이 풀릴 것 같아 자꾸 나에게 경각심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새 다시 여름이 왔다. 여름에 우울함. 1년 이맘쯤 늘 싸운다. 내 안의 너와 싸운다. 2007.07.10 05:02

    나의 탓

    고백기도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로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의무를 소흘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천주교의 고백 기도문이다. 지금은 성당을 나가지 않고, 신앙도 많이 사라졌지만 어릴 때 성당에서 기도를 할 때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라고 할 때의 기억이 너무 가슴 깊게 남아 있다. 모든 것은 나의 탓이다. 모두 나의 탓이고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래서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으며,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무언가에 실패했..

    그 때, 그 때...

    그 때 미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시작하지도 않았었겠지. 그때 미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끝네지도 않았을테지. 그 달콤한 독약 덕분에 .. 2006.11.22 22:27

    세상은 불공평해?

    세상은 불공평해?. .. ... .. . 맞아 세상은 불공평해 착하게 산 사람은 죽고 악독한 인간은 살아남지 노력한 인간은 실패하고 잔머리를 굴린 인간은 성공하지 아무리 달려가도 부유한 집의 인간은 편하게 앞질러가고 있지 그 불공평하단 이치를 깨닫고 어떻게 세상을 헤쳐나갈껀지 생각해야 되 2006.07.01 21:10

    사랑이라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정신과의사가 쓴 책에서 '사랑'이란 서로에게 너무 기대지 않은 채 자신의 욕구나 일은 상대방과 별개로 해나간다. 상대방이 죽더라도, 큰 슬픔이나 문제가 없듯이 말이다. 마치 이별이 두려워 이별해도 상처받지 않을만큼만 사랑하듯 이별해도 문제없이 준비해놓은 듯한 태도가 느껴져 버린다. 고통이 두려워 조금만 사랑하는가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이 같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은 책이지만, 나의 철학과는 동떨어진 듯한 이야기에 책을 덮었다. "정신적 숙성?" 우스운 이야기, 겁쟁이들에 이야기. 어쩌면, 내가 현실과 동떨어진 철학을 갖고 있을지는 모른다 해도 나는 그것이 좋다. 정의라는게 어디 있는가? 어떤 인간이 정의한 정의일 뿐, 안정적으로 오래 가면 사랑인가, 모든 이들이 욕하고..

    미래와 현실의 행복

    끝나지 않는 무한한 띠 뫼비우스의 띠 사람에게 주어진 하루는 늘 새롭지만 어쩌면 그 하루들은 같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때때로 저 먼 미래 어딘가에 행복을 위해서 현실은 고통스럽더라도 참아낸다. 하지만 인간의 희노애락에 감정들 속에서 한 시점부터 '행복'이란 감정만을 느낄 수는 없다. 행복하게 될 그 미래에는 또 다른 슬픔이 있고 그 슬픔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행복"을 느낀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미래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닌 현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현재의 행복을 찾는다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 같은 사람이다. 미래를 준비하되 현실의 행복을 찾는 것 참 어렵다. 나에겐 참 어렵다. 2006.06.12 09:31